
완벽한 날
곽애리
엄마는 아버지 묘소에 가본 적이 없다
젊었던 두 분은 붉은 도장을 찍고
서로의 길이 옳다고 헤어졌기에
엉거주춤 세월은 다 스쳐 지나가고
장마가 시들해진 여름 끝자락
한참 먼 이천의 국립묘지
아버지 묘소에 간다는 나를
엄마는 웬일인지 주섬주섬 따라나섰다
높고 낮은 초록 산세만 바라보던 엄마는
네 아버지는 죽어서도 복도 많구나, 중얼거리셨다
입 다문 사진 앞에 주저앉은 엄마
옷자락에 내려앉은 호랑나비
꿈속에서도 고통받던 두 사람의 긴 미움이 풀어지던 그 대낮,
한 가슴 메워오는
내 오래된 서글픔이 목에 걸려
잔기침만 한가득 묘소에 뿌려놓았다
ㅡ『주머니 속에 당신』(황금알, 2023)

<해설>
곽애리 씨는 1985년에 미국의 뉴욕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니 재미교포 시인이다. 2017년에 등단해 이제 막 첫 시집을 냈다. 이 시의 내용은 짐작하건대, 백 프로 실화다. 시인의 부모는 꽤 일찍 이혼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후에 묘소를 찾은 적이 없었다. 미국에 가 있었다면 더군다나 이혼한 남편의 묘소를 찾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의 아버지는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되어 있다. 국가유공자인 모양이다. 딸이 한국에 온 김에 참배하러 가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주섬주섬 따라나선다. 어머니의 심리가 이 시의 주안점이다. 성격이 안 맞았거나 불화하여 이혼했지만 한때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는 부부 사이였다. 한때의 남편이, 그리고 아이 아버지가 묻혀 있다니 가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첫 연에서 네 번째 연까지는 그간의 상황에 대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시는 어찌 보면 제5연과 6연이다. 서로 남남이 되어 상대방을 원망만 하면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아버지 묘소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으랴. 처음으로 어머니가 아버지 묘소를 찾아갔기에 ‘완벽한 날’이라고 한 것일 터, 부부간의 이혼이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자식의 “한 가슴 메워오는/내 오래된 서글픔”은 부부의 안중에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 정서로는 부모가 이혼하면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다. 가족공동체 유지가 무척 힘든 세상이 되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사랑의 탐구』, 『우리들의 유토피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공포와 전율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생애를 낭송하다』 『예수ㆍ폭력』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을, 문학평론집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욕망의 이데아』, 『경남 문인 4인을 새롭게 보다』 등을 펴냄.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