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역한다혜은어 떼 팔딱거린정겨운 감천강에계림사 전설같이호터를 다스리고꿈속의 이수원 고향뱃노래에 잠든다손에 든 방아깨비내달린 김천역에소금배 따라오던걸쭉한 천리 소식지금의 김천구미역풍문마저 낯설다ㅡ『시조가 그린 풍경』(국제PEN한국본부, 2023) 대구의 한다혜 시조시인이 김천의 역사와 김천역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게 신기하다. 김천은 예로부터 ‘삼산이수의 도시’로 불렸는데 삼산은 황악산ㆍ금오산ㆍ대덕산이며, 이수는 감천(甘川)과 직지천(直指川)을 가리킨다. 예전에는 감천과 직지천에 소금배가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곳

소 떼 몰고 간 왕 회장박이도어느 날 산신령이 나타나왕 회장의 꿈을 해몽하니금강산(金剛山)은 금광산(金鑛山)이로구나왕 회장 노다지 캐러 갔네소 떼 몰고 돈 지러 갔네피양에선 올래문 오라우돈 지고 오라우갚아도 되고 말아도 되는 돈이라면돈 지고 오라우가디요, 암 가야디요일가친척이 그립고동포애가 넘쳐돈 지고 갈랍니다모슬포에선 돈 지러 간다는데피양에선돈 지고 오라네부짓집이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왕 회장, 3년도 못 가 쪽박만 찼다네금강산은 금강시산(金僵屍山)*이런가햇볕으로도 녹일 수가 없구나.* 강시(僵屍)는 뻣뻣하게 얼어 죽은 송장을 뜻

만다꼬김일태만다꼬 씰데없이 너그 아부지는 얘기를 해가꼬바뿐 아를 댕기가구로 맹그노묵을 기 쌨는데 고기는 만다꼬 사 왔노걍 오지작년에 산 것도 아죽 때도 안 탔는데옷은 또 만다꼬 사 왔노하루 이틀 된 것도 아인데나이들마 다 쪼매쓱 아픈 긴데만다꼬 전화해가꼬아슴찬쿠로잘난 아들 얼굴 보고 맛난 거 묵고 항께좋기는 좋구마는만다꼬ㅡ김일태ㆍ성선경, 『여기, 창녕』(수우당, 2023) 어제 날짜로 소개하고 평을 썼던 시가 가족해체 현상을 담은 시라서 오늘은 가족 간의 정을 다룬 시를 다뤄볼까 한다. 이 시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화상으로

무장해제이종하아파트 같은 동 이웃집에는자식과 인연 끊은 노부부가 산다부모 자식 이어진 핏줄에 뜨거운 피가 흐르기는커녕얼어붙은 개천처럼 냉랭한 물이 흘렀다는데본처가 죽자 뒤늦게 할아버지는 재혼을 하고새어머니와 겉절이처럼 새콤달콤 살다가며칠 전 할머니마저 은행 통장을 남기고 세상을 뜨셨다통장에 있는 돈을 찾으려면 호적에 올라 있는 자식들의 상속 증명이 필요했는데그동안 등 돌리고 살아온 터라만나려 해도 쌓인 무기가 너무 많아 무장해제가 어렵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이웃사촌 덕분에 한마디 거들었다얄궂은 게 인연이라지만부모가 무장을 해제하는 것

향그러운 마약들 김동호 쓰레기통에 몰려드는 벌레들을 향그러운살충제로 싹— 죽이며방향성 살생제를 생각한다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마약들, 향그럽기 그지없다바퀴벌레를 집단적으로 죽이는 컴배트 max가 그지없이그들에겐 감미로운 것처럼감미로운 아편으로 17세기18세기 중국인들 많이 죽었다백인들이 베푸는 은혜의 술섹스, 향그러운 향락에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혼 많이죽었던 것처럼ㅡ『어머니의 흑백사진』(리토피아, 2023) 마약이 요즈음 언론에 아주 자주 나온다. 연예인 중 인기가 급상승 중이던 유아인이 구속되었다. 투약 의혹을 받은 배우

별밤지기 1 송수권 이게, 얼마 만이냐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슬픈 가족사의 밤암으로 죽어가면서 암인 줄도 모르면서마른 복국이 먹고 싶다는 아버지 부름 따라옛집에 오니 밤 개는 컹컹 짖어약속이나 한 듯이 또 흰 눈은 퍼부어우리 부자 복국 끓여 먹고통시 길에 나와 보니옛날의 국자 같은 북두칠성이 또렷했다구주 탄광, 아오모리 형무소, 휴전선이 떠오르고도란도란 밤 깊어 무심히 아버지 다리에내 다리 얹었다70년 황야를 걸어온 다리마른 삭정이 다 된 다리어금니 악물고 등 돌려 흐느꼈다.ㅡ『별밤지기』(시와시학사, 1992) 15행밖에 안

수화하는 아이김재수환하게 피는 꽃의 속삭임을너는 눈으로 듣지작은 바람결에도 손 흔드는나뭇잎들의 말도너는 눈으로 듣지너의 눈은 귀이다아름다운 노래도너는 손으로 부르지보이지 않는 바람의 안부나꽃들과의 속삭임도너는 손으로 하지너의 손은 입이다.ㅡ『2023 낙동강』(낙동강문학관, 2023) 수화란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손과 손가락의 모양, 손바닥의 방향, 손의 위치, 손의 움직임을 달리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를 가리킨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표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거나 말을 못하거나 듣지

또다시 선거철 우형숙바람 골 꼭짓점에자글대는 욕망 쌓여엄지척 신호마다광풍으로 휘몰아쳐생존 건 암투장 같아마음 통증 어쩌나ㅡ『괜찮아』(도서출판 가온, 2022) 내년 총선일이 4월 10일이니 15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힘겨루기가 벌써부터 팽팽하다. 신당 창당에 대한 소문도 계속 들려오고 있고 제2, 제3야당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원 의석을 거의 양분하지 않을까 싶다. 야당은 현 정권의 국정 운영의 실패를 물고 늘어질 것이고 여당

미완의 슬픔—우크라이나이현서몰락해 가는 저녁, 점령군처럼 눈이 내립니다 속수무책 쏟아지는 눈발 사이국경에선 더 이상 달이 뜨지 않습니다부서져 내린 폐허 속살얼음 진 공중에 무덤을 파며*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신음무너진 겹겹의 바람벽을 돌아서흑해를 떠돌던 눈물이 어떤 슬픔으로도 완성되지 못한 채사라진 도시, 사라진 미래얼어붙은 눈송이를 뒤집어쓰고 있는 자작나무 가지도 길을 찾아 떠난 새들의 온기마저 사라진 채몇 번의 전생과 후생을 건넜습니다존재와 부재 사이 홀로 숨죽여 흐느끼는 눈발의 감정을 헤아리다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미

메이저리그 윤선엄마는 선수였다한 번의 연습도 없이주위 사람 아무도 아프게 하지 않고선수답게 떠났다가끔 호스피스 병동 엄마 침실에 숨어들어방아깨비처럼 말라 버린 엄마 곁에서아침까지 잠들었다가 들키는 일은 있었지만해가 바뀔 때마다응급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연습하던 큰언니보다멋진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하늘까지 몰고 간작은오빠보다 오래 살았다자식들 하나둘몸 가르는 경기까지 다 지켜보면서당신의 홈에서 품었던 새끼들이죽음의 문턱까지 달렸을 때도당신의 피와 살을 긁어 그 문턱을마르고 닳도록 닦고 닦더니안간힘을 다해 문턱의 금을 짓뭉개 버렸다아무

사랑하는 아버지, 그 쓸쓸함안정옥할아버지는 종로구 낙원동에서 사셨다 곧잘 할아버지와 파고다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어린 내겐 구경거리가 많아 곧 할아버지를 놓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팔각정에는 뽀얗게 분칠한 여자들이 창을 구성지게 불렀다 한 남자가 진짜 가수처럼 을 불렀는데, 너무 잘 불러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더 부르라고 부추겼다조용함에서 내려오지 않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친구 비슷해졌다 마치 당신의 딸이 늙기를 기다려왔다는 듯, 보신탕집으로 데려가 소주와 먹어야 된다며 잔이 넘치게 술을 따랐다 서로 취해서

완벽한 날 곽애리엄마는 아버지 묘소에 가본 적이 없다젊었던 두 분은 붉은 도장을 찍고서로의 길이 옳다고 헤어졌기에엉거주춤 세월은 다 스쳐 지나가고장마가 시들해진 여름 끝자락한참 먼 이천의 국립묘지아버지 묘소에 간다는 나를엄마는 웬일인지 주섬주섬 따라나섰다높고 낮은 초록 산세만 바라보던 엄마는네 아버지는 죽어서도 복도 많구나, 중얼거리셨다입 다문 사진 앞에 주저앉은 엄마옷자락에 내려앉은 호랑나비꿈속에서도 고통받던 두 사람의 긴 미움이 풀어지던 그 대낮,한 가슴 메워오는 내 오래된 서글픔이 목에 걸려잔기침만 한가득 묘소에 뿌려놓았다ㅡ『

죄인의 노래고창률태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어도나는 태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죽었습니다.살아서도 죽었습니다.이 세상에 살면서도나는 죽었습니다.설 곳이 없습니다. 서서도 설 곳이 없습니다.하늘과 땅 사이가 한없이 넓지만한 척의 내 몸 설 곳은 없습니다.노래는 불러 안 불러 무엇합니까.하고많은 번뇌 가운데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ㅡ『걸레스님 중광』(도서출판 밀알, 1982) 승려 정휴가 낸 책 가운데 『걸레스님 중광』이 있다. 화가로 이름을 떨친 중광의 일대기를 쓴 책인데 시가 총 34편

오, 하느님 공재동태평양 어느 섬 죽은 고래 뱃속에서폐비닐 2,600개 플라스틱 3,400개하느님, 용서하세요, 인간의 저 무지를ㅡ『어린이 시조나라』(2023년 제28호) 공재동 시인은 1977년에 『아동문학평론』에 동시로,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시집을 그간 10권을 냈으며 세종아동문학상ㆍ이주홍아동문학상ㆍ최계락문학상ㆍ방정환문학상ㆍ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한 원로 아동문학인이다. 70대 중반인데 경남 창녕군 고암면에는 공재동문학관이 있다. 이 원로시인이 개탄하고 있다. 바다의 오염을. 이 동시

낭패민병도부축받아 뒷간 가던 아버지가 서서 지렸다백 마리 낭패 앞에 선, 사전에도 없는 표정내 생애 가장 뜨거운 침묵의 순간이었다깨진 알이 흐르듯 신발에 고인 바다드센 풍랑에도 바람 올 올 무지개 걸던아버지 섬으로 서서 내 손 가만 놓았다* 낭패：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동물이다. 낭狼은 뒷다리 두 개가 아주 짧은 동물이고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아주 짧은 동물이다. 이들 둘은 항상 함께 붙어 다녀야 먹이를 구할 수 있으나 서로의 생각이 맞지 않으면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이런 경우 ‘낭패’를 보았다고 말한다.ㅡ『고요의 헛간』(목언예원

저세상ㅡ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며하종오병 드신 아버지는 나와 아내의 수발을 받다가 저세상 가셨다병 드신 어머니는나와 아내의 수발을 받다가 저세상 가셨다 그래도 나와 아내는 집에서 자리보전하시던 아버지가 저세상 가시기 전에 문득 한 번나와 아내에게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서유리창문으로 얼핏 보셨던 골목길을 보지 않았다 집에서 자리보전하시던 어머니가 저세상 가시기 전에 문득 한 번 나와 아내에게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서유리창문으로 얼핏 보셨던 해거름을 보지 않았다 나와 아내가 늙은 아버지가 되어 병이 든다면늙은 어머니가 되어 병이 든다면 아들

겨박희준개나 소나 사투리로 시 쓰나니도 한번 써보라고 하는디우짜까사투리로 사투를 함 벌여봐야 쓰겄는디이? 그람 나도 개나 소여?아무튼 간에 말여시가 뭐라고 그래싼는가허구헌 날 앉아서 뭐헌다냐시방 쪼매 끄적이나 했더니뭐시여갑재기 왜 그랜겨이 그래서 그랜겨이 그랬구만시 쓰는 거 여간 대단한 게 아니여어디까정 써야 쓰겄나원래 쓰거운 게 몸에 좋당께저 저 가생이만 빙빙 돈께 안 써지지대번에 알아들었음 좋겄는디매갈없이 쓴 건디결국 또 이 모양이구만이것도 무신 소린지 모르겄지요즘 것들이 다 그려엔간하야 말이지말해 뭐햐오늘따라 쪼꼼 저기하네참말

아무르강의 붉은 꽃 곽효환국경을 따라 흐르다 북동으로 물길을 트는 붉게 혹은 검붉게 물드는하바롭스크 아무르 강가에서연해주의 들꽃 같은 소녀였고두 아이의 엄마였고고향 마을 소학교 교사였으나돌연 스물아홉에 홀로 우랄스크 지방으로 간꺼지지 않는 심장을 가진 조선의 여인을 만난다가녀린 몸으로 사자후를 토해내며노동자들에게 밀린 노임과 자유를 안기고방기된 청년들의 가슴을 다시 불타게 하고갈라진 조선인들에게 다시 독립을 꿈꾸게 한강인해서 아름다운 북관의 여인자유를 위해 나고자유를 위해 일하고자유를 위해 죽어*가며세상에서 가장 가련하지만 가장 경

불가능한 사랑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원구식 철없던 스무 살 무렵, 불가능한 사랑이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우주에서오직 한 명뿐인 시인이었다. 나머지 시인들은시인이 아니라 한 명뿐인 시인을 겨우 흉내 내는글쟁이들에 불과했다.*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한꺼번에 무너진다.”* 나는 아침마다 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독재자가 죽고 거대한 공화국이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는 사랑에 눈먼장님이었지만, 보았다, 천 리 밖에서 검은 소가흰 송아지를 낳은 것을, 의심하지 마라.쥐꼬리만

바다김민부 화려한 억겁의 전설을 부딪쳐 흩어지는 기포에 실어 보낸 위대한 거인의 크나큰 주먹이 멀리 푸르른 하늘을 찢어 더 푸른 수평선을 마구 흔들어 버리고야 말 천지개벽의 그 이튿날여기 모랫벌을 적시고 도망하는 하이얀 물방울마다 피 젖고 소라도 가자미도 무서운 비명으로 임종하던 그 화안한 대낮사람도 짐승도 나도 없는 황막한 우주에 나 하나 살아 있어 그 지독한 고독에 뒤쫓겨 여기 서는 날이라도이리도 거치른 바다 등지고 오직 푸른 하늘을 한 아름 이고 뒤돌아 피투성이 되도록 무참히도 진정 무참히도 죽여야 할 그 고독을ㅡ『항아리』(현